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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책과 까페

수원역 할리스 - 화술로 배우는 연기


연극을 만들려면, 연극 하나를 봐도 분석적으로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분석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먼저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아마추어의 마음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실제적인 부분 보다는 이론적인 부분에서 더 접근하기가 쉽다. 바로 이런 경우. 내가 어디 연기실습 상황을 볼 기회가 있을까? 그러나 이론서를 사서 보는 것은 쉽다.(물론 읽는게 쉽다는 말이 아니다. 책에 접근하기 쉽다는 거지.)

그래서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음에도 연기 이론책을 샀다. 제목은 제일 간지나는 걸로.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책의 서론에 이렇게 써있다.

"의료계에는 "책에서 배운 대로 환자를 치료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밟은 느낌이 났다. 소, 이 자식 참 기분이 좋았겠구나.


<화술로의 접근>

1. '무대발성'이란?

"목소리와 무대공간의 함수관계"라는 말이 나온다. 정비례일까 반비례일까. 굳이 따지자면, 무대공간이 커질수록 내야 할 목소리의 비율은 정비례, 무대공간이 커질 수록 들리는 목소리의 크기는 반비례이겠지. 아무튼 이 관계가 이렇게 수학적인 듯 하다. 그래서 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공연을 올릴 무대에서 연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게 잘 안 이뤄지는 모양이다. 매우 공감한다. 나도 기껏 연습했으나 당일 날 세팅 상태에 맞추느라 준비한 것을 다 하지 못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기자의 발성은 상대방 연기자를 겨냥하는 것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객석의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말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아야 한다."

쓰기엔 얼마나 쉬워도, 얼마나 많은 훈련이 되어야 실현할 수 있는 문장일까.


2. '무대 화술'이란?

'대사'를 '남의 말'이라고 표현하셨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공감하려 해봐도, 결국 내 말이 아니다. 내 말로 말하는 경우는, 연기가 아닐 때 뿐이다. 그래서 어려운 거다. 내가 생각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외워야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말'이도록 믿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니가.

"화술 구사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행위가 아니라 예술창조를 전제로 한 연주행위이다."

맞다. 내가 단순히 말하고 짜증내는 것은 그 말을 들을 사람들에게만 의도가 전달되면 된다. 그러나, 연기는 더 넓은 사람들을 신경써야 한다. 단순히 상대방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나의 목소리, 말투, 손, 표정이 어떻게 여겨질지를 신경써야 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것이 진실임을 믿게 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행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연주"다. 그리고 그래서, 연주는 의사소통을 포함한다.

그러나, "화술은 일상어와 언어라는 표현기호만 일치할 뿐 자기의 의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흔히는, 이것이 동일한 것이라 오해되기 쉽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화술과 일상어가 표현방식 마저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둘 사이에 표현메커니즘에 대한 접근은 다를지라도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의 결과-언어적 약속-는 일치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래서 표현 메커니즘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 이겠다. 간단히 얘기해서, 두 가지의 것은 각자 인식하게 되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달라야 한다. 애초에 다른 것이기 때문에 동일하게 해석하려면 두 가지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결국, 남의 생각을 자기 목소리로 내야 하는 데다 일상의 '언어적 약속'까지 지켜야 하는 화술구사야 말로 연기자에게 가장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3. '잘하는 연기'란?

누구나 잘하는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리고 보통 잘하는 연기라 함은, "연기자의 숨은 잠재력이 그가 맡은 역할과 일치할 경우에 잘하는 연기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연기는 현실 속의 살아 있는 인물을 모델로 하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연기자의 숨은 잠재력이 그가 맡은 역할과 일치한다는 것은 단순히 장점이 부각 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기자가 가진 선천적 결함들까지도 오묘하게 자기의 역할을 살리는 요인으로 둔갑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이 점이 재미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이유를, 역할이 연기자의 결함을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행운이라고 한다. 가령, 말을 더듬는 사람이 사고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 역할을 맡게 되면, 그가 말을 더듬는 것은 큰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런 사람 역할만 맡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언제까지고 행운에 의지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역할이나 잘 소화 하려면 "훈련을 통해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말 더듬는 것과 같은 "선천적 육체의 능력은 하나의 '고정된 영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의 표현력을 높여야 한다. 뒤에도 나오겠지만,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4. 화술은 시대적 요구를 뒤따르는가?

화술은 연주행위, 즉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의 요구에 따른 시대적인 감각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일상어와 다른 예술성(?)이 있는 목소리를 쳐줬다. 책에는, "요사이 이북사람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예쁜 목소리"라고 표현한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더빙 영화들은 다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어처럼 평범한 운율을 취할지라도 화자의 내면이 그대로 담긴 섬세한 목소리를 더 선호하는 시대"이다. "섬세함과 뉘앙스가 사라있는 말".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한다면, 왜 그런걸까? 연극, 그러니까 드라마(이야기)를 보는 목적이 달라져서 그런걸까? 그렇다면, 이 시대적 요구가 바뀔 날이 또 오게 될까?

책에서는, 이것이 TV가 끼친 영향이라고 한다. "TV에 익숙한 관객들이 자연히 꾸밈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연극적 목소리'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라고 써있다.

확실히, 연극 톤이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용되는 톤보다는 더 극적인 것 같다. 그렇게 해야 TV,영화와는 달리 관객들의 주의가 더 집중되어야 하는 공간이고, 그런 톤을 사용해야 관객들의 주의가 집중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집이나 TV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TV 속에서 듣던 그런 연기에 익숙해져버린 탓일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 연기자들은 자연스러움을 얻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지만 대신 목소리에 '무대적 에너지'가 없는 또다른 문제점을 야기한다." 아무튼, 화술에는 시대적 요구가 존재한다.


5. 화술교육은 가능한가?

책은, 연기력은 보통, 끼와 동일시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끼가 없어서 연기력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애매모호 하다. 그리고 "이 '끼'라는 잠재력은 내부의 또 다른 잠재력인 긴장이나 자신감 등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이런 내부의 또 다른 잠재력인 긴장, 자신감은 끼를 분출시키는 요소이기도 하고, 억누르는 요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끼 뿐 아니라, "충동과 감정은 일상처럼 본능이 아니라 잠재력이 된다."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가 이것 또한 연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연기자가 긴장에 빠지면 암기력이 둔화되어 버리는데, 이것이야말로 잠재력이 다른 잠재력에 의해서 훼손되는 예"라고 한다. 이런 경우를 없게 하기 위해, 선천적으로는 조절력이 있고 후천적으로는 이완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끼란 외부에서 어떤 영향을 가해도 항상 고정적으로 발산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들을 긴장으로 몰아넣은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반면 유럽의 연출자들과 작업을 하면 이런 긴장 상태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교육은 "무엇을 가르칠까 보다는 어떻게 가르칠까"가 더 중요하다. 방법론이 좋아야 잠재력을 살려내기가 좋고 방해물을 극복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아무튼 화술구사력은 타고난 끼라서 불가항력적인 능력이 아니다. 충분히 훈련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화술(연기) 교육>

1. 우리의 접근법

화술교육은 국어학적 접근에서 그칠 것이 아니다. 그것 보다 더 이야기적이고 맥락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작가의 예술적 의도를 연기자가 자기의 사고나 심리, 정서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와 "무대에서 어떻게 숨을 쉬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연기술적 접근(연기자적 접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국어학적 접근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령, 방언으로 올려지는 연극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은 바뀐다. 그러나, 연기자들이 표현할 것은 문자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연기자가 '죽어있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2. 교육의 필요성

연기자가 갖추어야 할 재능은 많다.

"생김새, 감수성, 암기력, 상상력, 직관력, 분석능력, 신체의 유연성, 목소리, 잠재력 조절력" 등등.. 그래서 "연기자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너무나 많다. 따라서, 이 모든 재능을 다 갖추고 태어나 연기에 입문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필요성인 것이다.


3. 우리의 지도법

"연기는 교육방법론이 좋아야 연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연기교육에서의 방법론은 그나라의 연기자들의 연기력을 재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연기예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연기자 자신이 바로 연기 예술의 표현도구가 되는 데 있다. 그러니까, 연기자 자신이 연기의 주체이자 동시에 표현의 객체가 되는 데 있다." 그래서 힘든 것이, 객관성의 확보이다. 연기를 하는 중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연기자 자신이 자기 연기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을 연기의 교육이나 지도로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연기교육은 어디까지나 연기자가 자기 스스로를 개발하고 자발성을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서 연기를 피드백 받는 교육의 양상으로는 지적, 보여주기 등이 있다. 이것은 결국 연출자와 연기자를 주종관계로 만들고, 연출자를 정신적으로 의탁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연기자가 독자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게 한다.

1) 지적에 의한 방법

이것이 왜 좋은 교육 방법이 아닌가? 그 이유는, "연기는 연기자가 자신이 능동적으로 자기의 내면과 외면을 움직여서 창조해야 생명력을 갖는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유기적으로 활용해서 살아있는 인물로 형상화 하는 예술"이 바로 연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객관성 확보'에 그 기준을 맞추게 되면, 결론적으로 남의 지적에만 의존하게 되고, 남의 눈치를 보는 연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연기 지도법이란 "연기자 스스로가 잘하도록 하는 것이 바른 지도법이다." 오히려 지적은, 관객이나 평론가가 더 잘 한다는 말도 덧붙여 써있다. 그래서 진정한 지도법이란 다시 말해서, "연기자가 자발성과 능동성을 가지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내면을 움직여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연기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보인 후가 아니라 보이기 전까지의 과정이다." 그러나 지적과 같은 지도방식은, 연기를 보인 후에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보이기 전까지의 단계를 연마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그 효과를 보기 힘들다. 그래서 항상 일회성을 효과밖에 거두질 못 한다.

그리고 지적은, 연기자를 "긴장", 즉 끼를 막는 그 순간이라는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한다. 사람이 매일 눈치를 보면 당연히 몸이 경직 되고 모든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유롭지 못하겠지. 그래서 결국 끼를, 감정을, 충동을 분출시킬 수 없다. 이것은 연기에 있어서 매우 안 좋다.

그래서, 지적 없이 연기자 스스로 자발성을 발휘하여 능동적으로 역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적은 그것을 하는 사람의 정확성이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니가 뭘 잘났다고 남을 판단하는가?

그래서 지적을 하는 사람은 판단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는 것만큼 들리고 보이게 해야 한다. 보고 듣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어떻게 보면 잘 발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이집가서 내가 느꼈던 것도 그랬던 것 처럼, 많이 알 수록 많이 경험할 수록 넓게 보인다. 나 또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이론서를 읽고 있는 것 처럼.

2) 따라하기

단 한 줄. "교사의 연기도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방식은 좋지 않다.


4. 즉흥의 활용

솔직히 여기서 말하는 "즉흥에 의한 방법론"은 잘 모르겠다. "먼저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요령과 적응력을 기른 후에 극중인물이나 인위적이고 까다로운 화술에 접근"하는 것인 듯 하다. 이것을 하지 않고 바로 대사 연습을 하면, "연기자가 주체성을 확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화술(발성, 호흡)이 자연스러움을 얻지 못 하는" 듯 하다.

인간은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대사와 같은 "남의 사고나 정서"를 맞닥뜨리면 주체성을 잃고 흉내를 내거나, 긴장상태에 빠져버린다. "따라서 연기자가 '남의 말'을 할 때에는 완충단계가 요구되는 데, 이것이 바로 '즉흥에 의한 방법'이다."

연기자가 먼저 즉흥, 애드리브로 접근해야 '말하는 목소리와 리듬'을 용이하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5. 화술교육(지도)의 세 단계

- 낮은 단계 : 지적으로 가능한 단계, 끊어 읽기, 표준어 발음, 장단음, 어미처리(억양) 등

- 다음 단계 : 호흡, 발성, 공명, 무대발성에 관한 것

- 높은 단계 : 무슨 말을 왜, 어떤 목적(의도)으로 하는가 하는 화자로서의 주체적 입장을 갖는 것

연기자가 화자로서의 주체적 입장을 갖는 것은, 곧 상대연기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을 의미하나보다. 훈련이 잘 안 되어있는 연기자는 대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못한다. 반면 우리는 일상에서 상대방을 듣고 자기의 입장을 정리한 다음에 말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긴장에서 자유로워 정신과 호흡이 안정적일 때 가능하다.

또, 말을 하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곧 악기를 조율한 상태, 그리고 악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말을 빨리 하지 않아도 템포가 죽지 않고 말을 빨리 해도 목소리와 신체의 움직임에 서두름이 없이 편안하고 안정적이어서 관객들이 연기자의 말을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체성의 확보는 지적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 자신의 부단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화술로의 여행>

1. 화술(연기)은 연주행위이다.

연기는 기술이 필요하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는 악기를 평소에 사용하지 않지만, 자신의 몸과 목소리는 평소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주행위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그러나, 결국 신체를 다루는 것도 연주행위이다. 그래서 엄연히 표현주체가 되는 연기자도 객체가 되는 자신의 신체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도 이것이다. 내가 스스로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자유롭도록 몸을 사용하는 것.)


1) 연기술과 연주술

연기술은, 연기행위를 위한 기술이다.

연주술은, 자신의 악기를 다루어 무대문법에 적응시키는 연주행위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끼'라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니 연기술에 약해도 연주술에 능통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 연주술은 능숙한 것이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경험적, 두뇌적이다.


2) 연기의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기술

호흡이나 발성은 후천적으로 훈련하여 충분히 개발이 가능한 재능이다. 그러나, 긴장에 대한 조절력과 판단력(상상력)과 같은 연주술의 영역은 선천성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연주술을 먼저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긴장에 대한 조절력이나 기본적으로 익혀야 하는 연기문법이나 적응력 등을 즉흥훈련이나 놀이를 통해서 익힌 후에 연기술에 접근하는 것이다. 끼를 확장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2. 연기에서의 선천적 재능

1) 긴장의 조절력

연기에 있어서 긴장은 중요하다. 이것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춰야 연기력이 발휘된다.

2) 감정 분출

극적 세계에서 감정이입을 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이 연기력에서도 보통 앞선다. 감정을 잘 분출할 수 있는가?

3) 표현도구(악기)의 성능

타고난 악기의 성능이다. 신체의 타고난 구조와 성능은 개개인의 표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악기는 선택할 수 있으나 신체는 선택할 수 없다.


3. 연주술의 영역

긴장의 조절력, 상대방과의 교류, 대사를 전달하는 요령, 무대공간을 인지하는 능력,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요령, 목소리나 신체를 조절하는 능력, 객석과의 교류, 역할을 지탱시키는 에너지 확보.

영상매체와는 달리 연극은, 연기자 스스로가 관객의 시선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연기력은 좋은 연주술에서 나온다.


4. 배우 추송웅의 연주술

그는 관객을 읽는 데 뛰어났다. 이것은, 좋은 연주술을 의미한다. 


5. 연주를 위한 조절력

현실에서는 이런 조절력이 본능적으로 발휘된다 그러나, 무대에서는 이것이 본능적으로 발휘되지 않는다.

1) 긴장에 대한 조절

2) 감정의 조절

감정, 목소리, 신체의 움직임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밸런스를 맞춰야 하낟.

3) 거리에 대한 조절

물리적 거리, 심리적 거리 모두에 대한 조절을 의미한다. 심리적 거리는, 내면의 심리로 인해 상대방과 생기는 거리를 의미한다.

4) 공간에 대한 조절

연주를 위한 말하기 이다.

5) 시선에 의한 조절력

시선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조절력을 발휘하낟. 연기자가 관객을 쳐다보는지 부터 시작하여 시선을 조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