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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래

그래도 9월이다 - 강산에, "올람 하바를 사는, 올람 하제를 바라보는 피스티스에 대한 노래"

너와 나의 하늘, 그 누가 몰고 왔나

온통 먹구름으로 가렸네

그래도 9월이다

너와 나의 사랑 먹구름일지라도

그래도 9월이다


너와 나의 하늘, 갑자기 억수같이

굵은 장대비들이 퍼붓네

그래도 9월이다

너와 나의 사랑 장대비일지라도

그래도 9월이다


매일 똑같지 않기를 바라는 그 시간들이

내 어깨 기대고서 살며시 잠이 든 널 보고 질투 하나봐

내 사랑, 단 하나

너와 나의 저 하늘

그래도 9월이다


너와 나의 하늘, 검은 커튼 드리워

하얀 별빛들 너무 아련해

그래도 9월이다

너와 나의 사랑, 별빛이 아련한 밤

그래도 9월이다


강산에 - 그래도 9월이다



0.

오늘은 진짜 이 노래 가사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비가 그쳤으나 아직 후덥지근했다.

그리고 어두웠다, 누가 이 하늘을 몰고 왔을까.

그래도 9월이다, 아직 살짝 어둡고 후덥지근해도, 빗방울은 안 내리니까.


아직 더 헤쳐나갈 먹구름이 살짝 남아있더라도

그래도 9월이다.

앞으로는 맑게 개인 하늘일테니.


1.

처음 이 노래를 들은 것은, 연극 "노란봉투" 이었다.

자신의 직장 동료가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3명의 동료들이, 걱정하다가 갑자기 기타를 잡고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기타는 그냥 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노래를 부르니 놀랐었다.

그런데 가사가, 참 인상깊었다. "너와 내가 지금 좀 멀어졌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 곧 9월이니까."

그냥 시간이 지나면 좀 낫겠거니 싶은 생각이 아니라, 8월의 다음은 화창한 9월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그저 흘러가는 것에 기대할 수 있는, 근거 있는 낙관이었다. 얼마나 깊은 믿음인가.

동료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벌어진 이 사이가, 영원히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좁혀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은 잠시 장애물 때문에 벌어져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걷혀질 장애물이라는 것을.

그 믿음에 대한 표현으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 후로, 안 좋은 일에 조금씩 햇빛이 비칠 때 마다 이 노래가 떠오른다. 곧 9월이다. 


2.

곧 9월이라는 그 낙관의 근거는, 참 굳세다. 자연의 섭리이고,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누구나 인정하는 그 자연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8월 31일이 지나고 9월이 온다는 것에, 그리고 그에 따라 계절이 차차 바뀐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든든하고, 이 사실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힘을 가진다.

그러나, 더위가 한창인 8월에는 이러한 사실이 체감이 안 된다. 당장 밖은 햇빛이 내리쬐고, 더위 때문에 몸은 괴롭기 때문이다. 시원해질 날은 어떨까? 물론 겪은 적은 있으나, 당장 더움에 너무 지쳐 먼 미래의 일 까지 기대하기는 힘들다. 내 눈앞의 더위를 식히는 데 치중할 뿐, 다가올 9월이 느껴진다거나 그러지는 못 한다.

그렇기에, "그래도 9월이다"라는 고백은 얼마나 힘든 고백이었을까. 얼마나 속으로 많은 더위로 인한, 장마로 인한 힘듦을 겪은 뒤에야 할 수 있는 고백이며, 그것을 겪은 뒤에 하기에도 쉬운 고백은 아니기 때문에.


3. 

올람 하제를 사는, 그러나 올람 하바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또한 이러하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지나친 낙관주의이지만, 8월이 지나면 9월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어둔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먹구름이 걷힌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달달말숨에서 배운 희랍어를 인용하자면, "올람 하바를 사는, 올람 하제를 바라보는 피스티스에 대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