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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뮤지컬

인터뷰 - 대학로 TOM

0.

이 공연을 보기로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기 때문에 시간과 가격만 맞으면 무조건 보러가려 했는데, 막상 시간과 가격이 맞으니 선뜻 보러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아무튼, 그래서 보러 가기 직전까지도 이게 잘 한 결정인지, 후회하지 않을 지 한참을 마음 졸였다.

뮤지컬의 작품성이 낮을까봐가 아니다. 이 뮤지컬이 웰메이드라는 사실은 이미 입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위로 받고 싶었다. 작품의 퀄리티에 관한 문제를 넘어서 그 퀄리티가 오늘 나에게 맞을지의 문제였다. 그래서 뮤지컬 빨래도 찾아봤으나 마티네인지라 티켓이 다 팔려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이게 최선인 것 같아 일단 구매를 했다. 

그렇게 극장에 들어왔다. 들어오고 나서도 보고싶던 공연을 보기 전의 그 긴장감이라던가, 설레는 마음이라던가 그런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이었으면 어떤 공연이든 설레였을 텐데. 내가 무뎌졌나보다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경건한 자세로 이야기 접하기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무대의 불이 꺼졌다. 배우들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배우가 아닌 누군가가 피아노에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새벽기도회 때나 볼 수 있던 "더듬이 스탠드"를 끼고 보면대에 악보를 놓았다. 아, 이 공연 피아노로 모든 반주를 다 하는구나. 그걸 본 순간, 이 공연 보러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피아노뿐만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배우는 총 세명이 나온다. 무대도 중간에 바뀌지 않는다. 의상도 한 벌 뿐. 안무도 많지 않았다. 그만큼, 작품성과 배우들의 연기력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연출이었다고 느꼈다. 나는 이런 연출이, 대본과 연기자들의 연기력에 베팅했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말하면, 대본과 배우를 믿고 이런 연출을 한 것이다. 화려한 작품이라고해서 배우들의 역할이 작다는 건 아니지만, 화려하지 않은 작품에는 대본과 그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역할이 커진다. 그래서 화려한 작품의 연출이 작가와 배우를 믿지 못 했다는 건 아니지만, 화려하지 않은 작품의 연출은 작가와 배우를 온전히 믿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소극장 공연은 재미있다. 뒷좌석이지만 배우들의 디테일이 보인다. 연출이 믿었던, 바로 그 연기력.


2.

이건명 배우님은, 내가 믿고 따라간 배우님이다. 작품 선택을 하실 때에, 항상 그 선택이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뮤지컬을 고르기 힘들 때에는 이건명 배우님을 따라가면 된다. 전문적인 시선에선 어떻게 보일 지 모르나, 그 분이 하는 행동과 말을 할 수 있는 내에서 관찰한 나로서는 그렇게 느껴진다. 배우로서 자긍심, 만족감 그런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얼굴은 삼십대 같으신 분이 이제는 스승, 아빠와 같은 역할에 어울리게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혈기왕성하거나 뭐 그런 역할은 이제 안 하시나. 라고 하기엔 다음 작품은 틱틱붐이다. 역시 배우들은 천의 얼굴. 또한 이건명 배우님의 역할 소화력은 만렙.

김경수 배우님은 오늘 처음 봤다. 처음에 예쁜 목소리로 말하시며 노래 하실 때에는 박은태 배우님을 모델로 연습했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색깔을 가진 배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맡게 될 많은 역할 중 하나에 불과했다. 몰입하기 제일 힘든 역할이었을텐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잘 소화하셨다. 게다가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각 캐릭터로 변할 때 마다 손동작 하나, 표정 하나, 세세한 말투 하나하나가 다 변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굉장한 것이 있는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만큼 역량이 되기 때문에 맡겨진 역할이었을 것이리라.

임소윤 배우님 또한 오늘 처음 봤다. 정말 어리고 여리게 생기신 외모에 비해, 다른 두 배우들에게도 눌리지 않는 깡다구로 "조안 시니어"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설득시켰다는 느낌을 받았다. 목소리가 극에 정말 잘 어울린다. 극 자체의 음산한 느낌과 아이같기도 하면서 사연 많아보이기도 하는 그 목소리가 무대에 울리면 정말 소름이 쫙 돋는다.  


3.

보니앤클라이드를 보았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는 범죄자를 만들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의 피해자는 또 가해자가 된다. 그렇게 극의 한 대사처럼, 한 가정이 파괴됨으로서 다른 가정이 파괴된다. 이것은 순환된다.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극을 보는 내내 가슴이 참 답답했다. 상처받은 나를 방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제물로 삼는다. 그 제물은 범죄자가 되어 또 다른 사람을 제물로 삼는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을 보니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극을 보다가 중간에 나가고 싶을 정도였을까. 무대로 달려가서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 뫼비우스의 띠를 곱게 풀어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피해자가 된 그가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극에서 이 부분은 원래 없던 설정인데, 후에 추가되어 많은 질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더 완전한 결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를 치료해준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그렇지만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루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품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결국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지는 세상이고, 이것은 이 땅을 밟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루어야 할 공동 목표가 아닌가? 우리는 세상에 치인다. 비합리적이고 아무리 봐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 실망하고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가해자가 된다. 그러나, 공연에서, 동화책에서, 드라마에서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우리는 결국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이 이야기의 순기능이라 생각한다.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소망이 맞다는 깨달음을 얻어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이렇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같은 마음을 품으면 모두가 옳은 세상을 꿈꿀 것이다. 뮤지컬 '인터뷰'가 전하는 메시지는, 더 나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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