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뮤지컬을 보면서, 느꼈다. 아, 저 피아노 만약 나한테 악보를 주시면 난 칠 수 있을까? 대충 들어도 오른손으로 한 번에 네 음씩 치면서 자리를 이동하는 것 같은데, 가능할까? 1초만에 절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악보를 구경해보고 싶기는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분도 악보 보고 하시는 것 같은데, 그 말은 악보가 실재한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보고 나서 한 일주일 뒤인가 이 악보를 MD로 판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병, 스티커, 전자파 차단 스티커 뭐 이런 MD는 봤어도 악보를 MD로 내놓는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내가 무지한 탓인가. 아무튼 그래서 생각했을 때, 뮤지컬 인터뷰이기 때문에-즉 피아노로만 진행되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가능한 MD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조건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1.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절대, 절대로 평탄하지 않았다.) 악보를 얻었다. 가는 날은 장날이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표지는 이렇게 생겼다. 까만색, 흰색. 겉 표지 재질도 종이라서, 외형에 그렇게 신경을 안 썼구나 싶었다. 이래서 2만원이구나.
심플하기로는 더할나위 없이 좋긴 하다. 그런데 보관이 오래갈 것 같진 않다. 깔끔하게 보관하려면 A4 비닐 포장지를 사야할 듯. 그러고보니 사겠다고 결심하고서는 아직 사질 않았다. 다이소든 어디든 얼른 가야겠다.
중간중간 삽화가 들어가있다, 깔끔한 크로키 느낌?
뮤지컬에서 중요하게 나왔던 장면들이 간단하게 스케치 되어 있다.
음표다.
콩나물국 수준으로 콩나물 대가리들이 빡빡하게 들어차있다.
나는 이걸 보고, "체르니 최대 몇?"이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난 40에서 의지박약으로 멈췄다.
아주아주 천천히 치면 가능하긴 했다. 근데 악상표현까지 하려면 정말 오래 걸릴 연습일 것 같다.
다행히도 코드는 정말 특이해서 한 번 들으면 오래 기억에 남을 코드라, 대충 코드를 보고 짜맞추는 건 가능했다.
그리고, 가사가 다 나와있었고, 중간 나레이션까지 다 나와있었다. 그래서 "대본집의 역할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그러기에는 이 뮤지컬이 송스루가 아니었다. 싱클레어가 유진에게 적대적으로 변하는 그 시점의 대사가 참 좋았는데, 그런 대사가 생략되어 있어 아쉬웠다. 유진이 싱클레어를 인터뷰하는 장면도.
지미의 이야기 부분은 손을 댔다가 포기했다. 사실상 말하듯이 노래하는 부분이라 코드만 둥둥 떠다닐 뿐 멜로디가 잘 기억나지 않아 포기한 것도 있다. 그리고 우디나 앤의 이야기 같은 경우도 연기 특성 상 음을 악보와 다르게 내면서 노래하기 때문에 처음 듣는 노래를 치는 기분이었다. 물론 반주를 들으며, 이게 있던 노래긴 하구나 싶긴 했다.
누가 울새를 죽였나 라던가, 애너벨 리 이야기 같은 넘버들은 쳐보면 다시 공연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막귀라서 상세한 차이를 잘 몰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특징이 너무 뚜렷한 곡이었고 잘 기억에 남는 곡이었다.
2.
공연 MD나 프로그램북은, 공연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존재한다. 뭐 그게 필수 탄생목적은 아닌데, 적어도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하다. 제작사 잘 되라고, 벽돌 하나 더 놓으라고 사주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런데, 뮤지컬의 반주 악보를 갖는다는 것은, 뮤지컬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법인 것 같다.
연습할 때는 어떤 뮤지컬이건 피아노 반주만으로 연습할 텐데, 그 반주들이 악보로 존재한다면 그걸로 파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오에스티를 사는 것 보다 재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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